경기중앙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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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침례교회 역사는 1889년 서울에 도착한 캐나다 독립선교사
  맬컴 펜윅의 선교사업으로 부터 시작됐다. 이후 침례교는 일제 탄압기와
  해방후 혼란기를 거치면서 생명을 이어왔다.


  1950년 한국 침례교는 미국 남침례교단과 선교협정을 맺음으로써 발전과
  번영의 전기를 마련한 이후 전도와 선교를 지상목표로 신앙정신을 구현하는 교단이 되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지난해 선교 110주년을 맞은 침례교단은 새 천년을 맞이하여 부흥과 성장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1999년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는 침례교회110주년 행사가 10만 성도가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올 1월 호주에서 개최된 침례교세계대회에서는 김장환 목사가 침례교세계연맹(BWA)
  총재로 선출됐다. 한국침례교단은 이처럼 세계 속의 교단으로 성장하고 있다.

 ■ 침례교회의 시작


경기중앙교회 침례식 장면 

 침례교회의 시작은 언제부터냐에 대한 질문은 침례교회 교회사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  는 문제다. 신약성서 시대로 거슬러올라가 침례 요한 이 요단강에서 회개의 침례를 베풀던 시  기를 신약교회인 침례교회의 출발로 보고 있는가 하면,중세가톨릭교회의 내부개혁세력인 루  터나 칼빈의 개혁교회운동에 비견해 외부 개혁세력의 중심이었던 재침례교파에서 시작됐다는  설도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근거에 의하면, 기독교회사에 침례교회란 이름이 정식으로 등장하  게 된 것  은
1644년쯤 영국 침례교회의 발현에서부터다.물론 유럽대륙 내에서 활동하던 재침례  파중  일원인  네덜란드의 재침례파 성도들이 영국으로  건너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침례교도의 영적인  선조는 신약성서 시대의초기 그리스도인들이다.교회사에서는 감추어져  있는 신약성서적 표준과 모범을 이어온 일단의 무리와 종교개혁 시대 상당한 개혁 세력을 구  축하며 역사속에 등장했던 재침례파에서 그 영적 계승을  볼 수 있지만 침례교도란 공식 이름  의 발단은 이때부터라고 보는 견해가 정설이다.

 신앙의 모본과 최고 권위로서 신약성서의 재발  견은,영국 국교회로부  터 남녀 신자들을 이  끌어내 신약성서의 원리들을 보존하는 것으로 그일맥의 혈통을 특징지은 사람들의 대열에 가  담하게 한 것이다. 특히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개인적 신앙고백에 의한 믿는자에게 베푸는 침  례를 강조하는 부분과 의식의 방법에서 침수례가 두드러지게 강조되므로 당시 박해자들
 (로마 가톨릭은 물론 영국국교회, 당시 개혁파인 루터교,장로교 등)로부터 ‘침례교도’란 이름  을  얻게 되었다. 마치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이 신약시대 안디옥에서 믿는 자들을 일컬었던  것처럼.

 그 근원과 시작이  어떠하든지 침례교도란  이름을 갖게 된 신약성서적 기독교인들은  처음  부터 혹심한 박해를 받으며 자라왔다.초기박해의시기 영국 침례교도들중 대표적인 사람  으로  는 많이 알려진“천로역정”의 저자  존번연을 비롯해 불후의명설교자 스펄전목  사, 최  초  로  해외선교의횃불을든 윌리엄케리 등을 들 수 있다.



 ■ 침례교회의 부흥운동



지미 카터 전대통령(Jimmy Carter)

 유럽대륙 어두운 교회 역사 속에서 발아하기 시작한 신약성서적 모본을 실천하고자 하는
 신약교회는 영국에서 잎을 내어 침례교회로 모습을 드러냈고, 당시 종교의 자유를 찾아
 건너온 청교도들과 함께 미국에서 정착해 대각성 부흥운동 등을 거치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일약 세계적 대교단으로 성장하였다.

 초기 식민지 미국에서도 침례교회는 박해를 받으며 성장했다. 대표적 박해의 사례로, 하버드  대학교 초대 총장인 헨리 둔스터는 유아세례를 거부한다는 이유만으로 총장직에서 면직되고  그 식민지에서 추방되기도 했다.

 그러나 양심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정신으로 제퍼슨의 초기 미국 헌법의 기초를 이루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 침례교회는 미국의 건국과 더불어 박해에서 벗어나 무한성장할수 있었다.

 현재 미국남침례회는 단일교파로는 개신교 중 세계에서 제일 큰 교파이며 가장 많은
 해외 선교사를 파송한 교단이 되었다. 성도들이 익히 아는 바 지난 세기 세계적인 전도자로  명  성을 날렸던 빌리 그레엄 목사나, 대통령 재직중 교회학교 교사직을 버릴 수 없다고 하여  유명  한 일화를 남겼고 대통령 퇴임 후 더 활발한 활동을 하는 카터 집사 등이 훌륭한
 침례교인들이다.

 
현재 전세계 침례교도의 통계는 침례교세계연맹(BWA)에 가입한 교회수 15만8,384개,
 침례교인 4,2315,140명, 등록 교인은 1억5,000만명을 넘는다

 
  ■ 한국의 침례교회

  캐나다 독립선교사 맬콤 펜윅의 헌신

   한국의 침례교회는 1889년 12월8일 캐나다에서 온 독립 선교사 맬콤 펜윅(Malcom C. Fenwick)의 선교에서부터 시작된다.
  신학교육을 받지 않고도 강력한 영적 경험을 토대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한 그는 후에 고국으로 돌아가 신학교육을 받은 후 원산을 중심으   로 복음 전도와 전도자 양성에 힘썼다. 아울러 때를 같이하여 펜윅 선교사와 교분을 갖고 침례교회 신앙을 심어준 고든(A J. Gordn) 목사가
  시무하는 보스턴의 크라랜돈가 침례교  회에 속해 있는 엘라싱 선교회의 폴링(E. C. Pouling) 선교사 부부 등의 선교로 공주와 칠산, 강경에   최초의 침례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1901년 원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펜윅 선교사가 엘라싱의 선교지역인 충청도와 전라북도를 인수받아
  활동적인 순회 복음전도활동을 펼쳐 충청도와 전라도 북부, 경상도 북부 지역에 31개의 침례교회가 설립되었다.

  
국내의 효과적인 전도활동위해 "대화회" 조직

  한국을 위시하여 동북아의 선교에 뜻을 둔 펜윅은 보다 효과적인 선교사업을 위하여 1906년 10월6일 강경에 전 사역자를 소집하여 대회를
  열고 46개조로 된 교규를 만들고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하였다. 매년 소집되는 대회를 ‘대화회’라 하고 첫 대화회(1906년)에서 국내의
  효과적인 전도활동을 위해 교단 산하에 원산·강경·공주·영동 등 구역을 설정하고 지도자를 세워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아울러 그해 한태영 외 4인을 함경도와 간도로 파송, 전도하게 함으로써 선교지향적 교단의 출발을 보였다. 1921년에는 일제가 대한이란
  국호를 사용치 못하게 함에 따라, 그리고 국경을 넘어 동북아시아 선교의 비전을 담기 위해 동아기독교회로 교단 명칭을 바꾸어 만주
  시베리아·간도 등에 많은 선교사와 순회 전도자를 파송하여 교회를 세움으로써 교세를 확장하였다.

  
복음전도에 힘쓰다 순교당한 성도들 그리고 교단해체...

  이 시기 교단은 이미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는데 특기할 만한 것은 모두 복음 전도에 힘쓰다 해난사고로, 공산당에 의해, 또는 일제 밀정으로   오인되거나 몽고 토족의 습격으로, 또는 일제 박해에의해 순교했다. 특히 1925년에는 총회가 일제하의 학교교육을 금지하는 훈령을 내리고,   일제의 황궁요배와 신사참배에 불응하여 갖은 박해와 고난을 받았다. 1941년 원산32인사건은 교단에서 발행한 성경을 불온문서로
  취급한 일제에 의해 모든 재산이 압류되고 이종근(당시 총회장) 감목을 위시해 32명의 교역자가 옥고를 치르게 된 사건이다. 마침내
  1944년 5월10일 일제는 교단 해체령을 내렸다. 당시 통계로 한반도와 만주, 간도지역에 26개 구역(현 지방회) 400여개의 침례교회가 있었다.

  
해방과 더불어 교단재건후 침례교 부흥

  해방과 더불어 교단은 재건에 나서 (남한 6개 구역 42개 교회) 마침 미국남침례회 해외선교부와 선교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대한기독교침례회’로 교단 명칭을 정하고 1951년 침례병원을 설립했는가 하면 1953년 침례회 출판사를 설립해 오늘의
  교회진흥원으로 발전시켰고, 1954년 대전에 ‘침례회신학교’를 개교하게 되었다.
  1955년에는 교단 기관지인 “침례회보”(현 침례신문)를 발간하고 일취월장하여 몇번의 교단 명칭 변경을 거쳐 현재 기독교한국침례회가
  되었다. 특히 1970년대에는 한미전도대회를 통해 교회가 양적으로 부흥했으며 새신자 훈련총서를 비롯한 교육과 훈련교재를 통해 성경교육   으로 교회의 질적 부흥을 이뤄냈다. 아울러 대표적인 부흥사(오관석·김충기·고승혁·지덕·김장환목사등)들의 부흥회를 통해 교단 내외적으로   부흥하는 교단이 되었다.

 
 침례신학대학교 설립과 전국적인 침례교회 활성화

  또한 1981년에 수도권 침례교회 목회자 양성을 목적으로 수도신학교가 설립되었고, 1990년 은퇴교역자의 연금 지급과 사고·질병으로
  사역할수 없는 목회자와 미망인, 그 자녀들을 돕기 위해 교역자복지회가 설립되었다.
  한편 침례교회 여성들을 기도·교육·선교훈련 프로그램과 증거·섬김의 프로그램에 연합하도록 1954년 전국여전도연합회가 구성되었고
  1982년에는 전국남전도연합회가 구성되었다. 현재 기독교한국침례회 산하에서는 11개 기관이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106개 지방회,   2,450여 교회, 4,350여명의 목회자, 75만의 침례교인이 소속되어 있다.
  1999년 5월5일에는 침례교회 110주년 행사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10만 성도가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렀고 2000년 1월8일
  호주 멜버른에서 개최된 제18차 침례교 세계대회에서 전세계 115개국 201개 총회 및 연맹이 가입되어 있는 침례교세계연맹(BWA) 총재로
  한국의 김장환(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가 선출돼 세계 속의 한국 침례교회의 위상을 드러내고 있다.
  침례회 총회 본부도 반세기 동자동 시대의 막을 내리고 구로구 오류동 115-1에 1,000여평의 대지, 1,180평의 건물을 매입하여 이전,
  오류동 시대를 열었다.


 
  ■ 침례교회의 특성

  침례교회의 시작과 부흥, 한국의 침례교회에서 지속적으로 지적해온 대로 침례교회의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침례교회는 성경(특히 신약성경)을 신앙과 행실의 모범과 최고의 권위로 삼는다.
  ― 침례교회는 개인적 믿음으로 구원받으며 신자는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함을 강조한다.
  ― 침례교회는 교회와 세속 정부와의 분리를 주장한다.
  ― 침례교회는 개교회 독립을 강조하며 회중적 민주제도를 행정체제로 삼는다.
  
― 침례교회는 복음전도와 해외선교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성취하기 위해 개교회가 협동하여 총회를 구성한다.
  ― 침례교회는 전신자의 제사장 직분자로 각각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
  ― 침례교회는 성례의식으로 침수례에 의한 침례와 주의 만찬식을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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